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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가족부 X 이재은 조교수_2편, 일의 절정기에서 사라진 여성들, 그리고 다시 쓰는 삶의 서사
등록일 2025-10-31 조회수 114


성평등가족부 X 이재은 조교수

일의 절정기에서 사라진 여성들, 그리고 다시 쓰는 삶의 서사


이재은(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조교수)




일의 절정기에서 사라진 여성들,

그리고 다시 쓰는 삶의 서사



글쓴이 소개

이재은 : 기초 지자체 산하 여성일자리주식회사의 초대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성주의저널에서 취재기자와 여성 일자리 기관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 HRD(인적자원개발) 분야의 연구와 현장 개선에 매진하고 있다.


#1. 경력의 고지에서 멈춘 40대 여성들

 


“믿기지가 않네. 내가 회사의 최고참 여성이라니.”

어느 날 문득 사무실을 둘러보니 ‘회사 언니’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십 대 초반의 중간관리자 여성 몇 명이 전부였고, 비슷한 연차의 또래 여성은 물론 선배 여성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직 마흔 중후반에 불과한데, 마치 조직의 마지막 생존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문득, 궁금해지더군요. 전쟁 같았던 육아기에도 직장을 지켜온 여성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왜 그들은 사라져야 했던 것일까.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여성에게 40대 중후반은 가장 일하기 좋은 시기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 돌봄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고, 일에서는 전문성이 최고조에 이르러 자신감이 붙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렵까지 일터를 지키고 있는 또래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뭐... 또 경력 단절인 거지. 아직 애들 교육 뒷바라지할 일도 많잖아.”

“이십 년 넘게 직장생활 했으면 이제 슬슬 나갈 때도 됐지.”


물론, 여성 고용의 40% 이상이 비정규직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이탈에는 계약 만료나 승진 정체 같은 구조적 요인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시기를 버텨온 40대 중후반 여성들의 조직 이탈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다른 이유가 분명 존재합니다. 


공식 통계들은 여전히 45세 이상 여성의 퇴직 사유를 ‘육아 및 가족 돌봄’에 따른 경력 단절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이미 육아기를 지난 여성들에게는 정확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자녀 교육비 등 지출이 가장 많은 시기에 ‘조기 은퇴’를 선택한다는 것도 쉽게 납득되기 어렵습니다. 이 시기의 여성들이 겪는 ‘일의 의미 상실’과 ‘정체성의 혼란’은 다른 생애 구간보다 깊고 복합적입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인적자원의 활용과 개인의 성장 모두에 중요한 사회적 이슈입니다. 


여성의 경력을 은유적으로 설명한 ‘만화경 경력모델(Kaleidoscope Career Model)’에 따르면, 생애 단계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달라집니다. 40대 중후반 여성에게는 ‘균형’이나 ‘성장’보다 ‘진정성(authenticity)’이 핵심 가치로 떠오른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내면적 가치와 일의 방향이 일치하는가를 묻게 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오랜 시간 몸담았던 일터를 떠나게 되는 것이지요. 해외에서도 경력 절정기에 조직을 떠나는 여성들을 주목한 연구들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가 여성 고용 특화기관의 대표로 근무하며 50대 이상 여성들을 반복적으로 인터뷰했을 때, 그들이 40대 중후반에 일터를 떠났던 이유는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과거와 다른 삶을 살고 싶은 갈망’, ‘오랜 시간 누적된 피로와 번아웃’, ‘현재 일에 대한 회의와 갈등’. 이 세 가지가 공통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체력의 한계에 부딪히고, 롤모델은 찾기 어렵고, 일의 의미마저 잃어가는 복합적 상황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조용히 사라져갔던 것입니다.


#2. 나아가기 위한 멈춤의 미학, ‘의식적 후퇴’


변화를 희망하며 떠남을 선택하는 이 시기를, 저는 ‘의식적 후퇴(Conscious Retreat)’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의식적 후퇴’란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전략적 멈춤으로 일시적으로 속도를 늦추며 자신에게 맞는 리듬으로 일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도 이런 ‘의식적 후퇴’를 선택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20년 가까이 기자로 일하던 한 지인은 대학원에서 심리학 공부를 병행하며 ‘연구자’로 정체성을 확장하여 프리랜서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만들어 가고 있고, 금융사 PB로 근무했던 또 다른 지인은 정리 컨설팅 사업을 준비하며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잠시 속도를 멈춰, 호흡을 고르며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시간을 연결하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본연의 자기를 다시 이해하고, 그동안 지속적으로 시도해온 것들과 지금 마음이 향하는 것을 잇는 과정 속에서 이들은 자신만의 ‘일 서사’를 다시 써 내려갑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되돌아보고, 그 일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이미 마음속에 ‘다음 방향’이 있을 때만 가능한 작업입니다. 


즉, 나의 일 서사를 정리하는 일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점검하고 재구성하는 적극적 행위입니다. 자신의 일을 하나의 드라마처럼, 타당한 흐름과 전개를 가진 이야기로 재구성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나이 든 여성’이 아니라, 나이 들수록 더 나아가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사라지는 여성들’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진화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나이 들수록 더 나아가는 여성들의 공통점 4가지


①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습관’

세계적인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Martha Stewart, 84세)는 최근 웰빙 전문기업을 설립하고 웰에이징 뷰티 브랜드를 런칭했습니다. 그녀는 “은퇴 없는 삶”을 꿈꾸며, 매일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도전이 자신을 늙지 않고 진화하게 하는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②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 ‘표현의 적극성’

김영옥 배우(87세)는 여전히 무대와 드라마, 성우로 활약하며 일의 기쁨과 재미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패션이나 액세서리처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활동을 즐기며, 친구들과 식사하거나 콘서트를 관람하는 등 좋아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누립니다. 자기를 표현하는 즐거움의 에너지는 자기 존재의 가시성을 확인하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③ 자기 루틴으로 건강을 지킨다 – ‘몸과 마음의 일상화된 관리’

오프라 윈프리는 매일 아침 20분 명상과 감사 일기를 쓰는 루틴을 수십 년간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 꾸준한 습관은 자기 통제감과 주도성을 강화하며, 외부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리듬을 만들어 줍니다. 


④ 좋아하는 일을 위한 시간을 지킨다 – ‘기쁨의 시간 확보’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인 가수 김완선 씨는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는 일을 즐겨왔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일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잠재력을 탐험하고 단단한 자존감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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