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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와 화해하기

내 아이와 화해하기

속마음과는 다르게 또 큰 소리를 치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와야 할 시간을 30분이나 넘겨서 돌아왔고,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희정이네 들려서 오느라고.......” 하는데 제가 버럭 해 버렸습니다.  “네가 왜 희정이를 데려다 줘? 네가 걔 종이야?”  “엄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종이어서 데려다 줘? 얘기를 하다 보니, 걔네 집 앞에까지 갔고, 거기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늦은 거지!”  “그러니까, 네가 왜 희정이네 집 쪽으로 가냐고? 희정이가 우리 집 쪽으로 와도 되잖아?“    말해놓고 나니 더 어의가 없는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아이를 잡았습니다. 실은 평소에도 아이가 친구 사귀는 모습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딸은 누구 하나가 좋으면 뭐든지 그 친구와 함께 하려들고, 조금이라도 사이가 벌어지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요새는 희정이에게 꽂혀서 저렇게 붙어 다니니,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것입니다.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을 해야지! 엄마가 기다리잖아, 엄마가 걱정하잖아!“로 마무리를 하려했지만, 이미 던진 거친 말들로 아이 마음은 닫쳐버렸고, 결국 딸은 “엄마는 괜히 그래! 내가 뭘 어쨌다고?”라며 제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성을 내고 들어가는 아이 뒤통수에 대고 다시 한 소리를 할까 하다가 말을 삼켰습니다. 나도 내가 엉뚱한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으니까요.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30분 늦어서도 아니고, 밥시간이 늦어서도 아니라는 것. 본심은 딸의 친구 사귀는 행태인데, 그 또한 그 자체가 큰 문제여서라기 보다는 내 어릴 때 모습이 겹쳐져서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니까요.  어릴 때 내 마음의 가장 큰 무거움은 늘 친구 사귀기였습니다. 새 학년이 되면 난감했고, 학교 가기가 싫었고, 간신히 다가와주는 한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만 바라보며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행여나 그 아이가 마음이 바뀔까봐 조마조마했고, 그러니 잘해주고, 양보하고, 맞춰주는 것은 늘 내 몫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어머니가 마지막 선은 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끝까지 본인의 옳다는 논리를 펴면서 아이를 몰아붙이고, 아이 입에서 잘못했다는 소리를 듣겠다고 우기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작게, 크게 부딪힐 일이 늘어납니다. 그건 당연하기도 하고, 심지어 바람직하기조차 하지만, 막상 겪는 부모 입장에서는 그렇게 개운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좀 틀렸어도, 실수를 했어도 알게 모르게 넘어가던 때가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호시절은 없을 것입니다. 아이는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부모의 말과 행동을 인정하기 어려워하며 본인의 입장을 표명합니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때로는 항거하고 반항하는 태도로.  그렇게 아이와 불화를 겪었을 때, 아이 쪽에서 먼저, ‘엄마,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죄송해요’를 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 내 아이가 한 서른은 되면 모를까....... 아직은 턱도 없는 기대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하는 부모도 많습니다. 불화 다음에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을 안 섞고, 냉랭하게 대하는 부모, 또는 지난번 그 사건을 다시 꺼내 야단을 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도 개운해지고, 아이와의 관계도 회복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와 어긋났을 때 먼저 화해의 손길을 보내야하는 쪽은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아이가 분명히 잘못했을 때도 그러하고, 실은 부모가 너무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어린 그들은 우리의 눈길을, 손길을 분명 원하고 있습니다. 화해하고 다시 친밀한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은 부모나 아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회복의 과정은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 먼저 한 발짝 떨어집니다. 의견이 엇갈려 소리가 커지고 화가 치미는데, 거기서 계속 머물러 좋은 결론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을 때 비로소 상호간에 무엇이 오고갔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결론을 내자고, 끝장을 볼 때까지 승강이를 벌일 것이 아니라 ‘지금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다시 생각해보자’가 나을 것입니다. 이 기간은 몇 시간도 좋고 며칠도 좋습니다.  둘째. 회복과정에는 두 가지 초점이 있음을 기억합니다. 하나는 ‘아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아이 편에 대한 궁리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나에 대한 생각입니다. 아이와 크게 부딪쳤고, 그 연결이 선명하지 않다면, 많은 경우, 부모 쪽의 정서적 주제가 섞여있습니다. 부모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감정의 묵은 찌꺼기가 아이가 가져온 사건으로 자극되어 폭발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중요하고도 어렵습니다. 내가 부모니까, 내 문제보다는 아이 문제 쪽에 초점을 맞추려합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 중요해서’라고 합리화를 하지만, 실은 내 문제를 보기 힘들어서일 것입니다. 셋째. 두 번째 과정을 잘 해 냈다면, 다시 아이와 마주 앉아도 좋습니다. 이 때 우리의 희망은 회복이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다시 야단치고, 항복을 받아내고, 재발방지를 약속받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부모와 불화를 겪으면서 아이는 무엇을 경험했는지, 아이의 느낌과 생각을 묻고 들어보려는 것입니다. 아울러 나는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무엇을 실수했는지 후회하는지 말하려는 것입니다. 변명하지 말고 심문하지 말고 가르치려는 마음도 참아야합니다. 부모를  이해하라고하기 전에 아이의 입장과 경험을 충분히 듣고, 납득하기 어려운 점을 묻습니다. 잘 듣기 위한 질문과 비난하기 위한 질문은 다릅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사태를 제대로 설명하면서 나름대로의 자각과 각성을 얻습니다.       부모 노릇을 길게 할수록 자식 앞에 솔직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알게 됩니다. 부모 노릇 중, 지적하고 야단치고 설교하는 것이 가장 쉽다는 것도 인정하게 됩니다. 부모 자식 관계가 언제나 화기애애할 수 없습니다. 성장해가는 자식과 갈등은 당연한 수순이고, 그 과정을 어떻게 견뎌내는가에 관계의 질이 정해집니다. 우리는 자식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가 서로로 인해 행복해지는 삶을 희망합니다. 자녀와의 관계 형성에 사춘기는 중요한 국면이 될 것입니다. 내 문제를 바라보는 용기, 실수를 인정하는 솔직함, 부모라는 기득권을 기꺼이 내려놓는 철학적 태도가 우리의 무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기연(호연심리상담클리닉)

2019-12-26
좋은 부모의 조건: 높은 자존감과 건강한 의사소통

좋은 부모의 조건: 높은 자존감과 건강한 의사소통

좋은 부모란 자녀의 성장발달을 잘 이끌어주고 건강한 부모자녀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부모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에는 벽돌을 한 장씩 쌓으며 공들여 집을 짓는 것과 같이 하루하루 쌓아 나가는 꾸준함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부모 자신도 성숙한 성인이 되어야 한다.  ■ 예비부모 자존감 높이기  자존감은 자존심과는 다르다. 자존심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 우월한가 열등한가를 따지는 것이고, 자존감은 남과 자신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존감은 자기 가치감, 유능감, 자신에 대한 호감의 영역으로 구성된다. ‘자기 가치감’은 말 그대로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며 인정하는 것이고, ‘유능감’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여러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많아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하고 생각하며 자신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호감’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실패해도 이렇게 노력한 내가 참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호감이다. 자존감의 세 영역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으며, 이 세 영역이 제대로 적용되면 자존감도 높아진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매사에 활기를 띠며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모습은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자녀가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존감 높은 아이는 높은 자존감을 가진 부모에게서 길러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부모 자신의 자존감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부모가 될 나부터 자존감을 높이도록 해보자. 자존감은 향상될 수 있다.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며 유능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 부부가 건강한 의사소통하기(대화하기)  자녀와 건강한 부모자녀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말하기, 듣기, 눈빛, 억양, 제스쳐 등을 모두 포함하여 의사소통이라 하는데, 특히 말하기와 듣기를 잘 하려면 어느 정도의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주의가 기울여지고 더 듣고 싶게끔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이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또는 나의 말을 잘 들어주어서 내가 인정받고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내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말하기와 듣기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이다. 부부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원하는 바를 어떻게 말하고 어떤 태도로 들어주는지에 따라 부부관계의 질은 달라진다. 그리고 이러한 부부관계의 질은 부모-자녀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예비부모인 지금부터 더욱 건강한 의사소통을 하도록 노력해보자. 부부관계가 더 좋아지게 될 뿐 아니라 자녀를 출산하고 함께 육아를 할 때도 부부가 서로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자녀를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다.   ■ 부부 건강한 의사소통하기 TIP ▶1인칭으로 말하기  : ‘나’의 입장에서 내가 원하는 것과 나의 생각, 느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갈등상황일 때 ‘너’ 혹은 ‘당신이’ 라는 말로 시작하면 상대방을 비난하게 된다(예: ‘당신이 잘못했잖아’). ‘나’로 시작하여 나의 기분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예: ‘나는 지금 상황이 무척 당황스러워.’). ▶서로 잘 듣기(경청하기)  : 건강한 부부관계, 좋은 부모자녀관계를 위해서는 잘 말하는 만큼 잘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잘 듣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눈을 마주치고 주의를 기울여 배우자의 말을 들어주자. 들으면서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그렇구나’하며 내가 잘 듣고 있다는 신호를 주면 금상첨화다.  가끔씩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그러니까 ~해서 ~한다는 이야기지?” 하고 확인하거나, “그래? 그 부분을 좀 더 이야기 해줄래?” 하고 부족한 정보를 요청하면 배우자의 이야기를 더욱 잘 들을 수 있게 되고 부부간의 대화는 훨씬 진솔하고 풍부해지게 된다.  ▶불만이 있다면 쌓아두지 말고 짧게  : 부부가 서로에게 불만이 있어도 이를 표현하지 않고 쌓아두다가 어느 날 작은 사건으로 갑자기 감정이 폭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본인은 무척 화가 나는 일이겠지만 상대방은 영문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불만이 있다면 쌓아두기보다는 그때그때 표현하도록 하자. 단, 짧게, 그리고 지금 불만이 생긴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도록 한다. 지금의 일로 과거의 갈등까지 꺼내는 것은 오히려 부부관계에 해롭다는 것을 잊지 말자. 과거의 일은 변할 수 없지만 앞으로의 행동이나 생각은 부부가 함께 더 좋은 방향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다. 박지현(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2019-12-24
다자녀 가족의 부모역할: 형제자매 키우기

다자녀 가족의 부모역할: 형제자매 키우기

자녀계획에 의해서건 어느 날의 뜻밖의 선물이건 두 자녀 이상을 낳아 기르게 되면 부모는 첫 자녀를 낳았을 때와는 또 다른 혼란을 겪기도 한다. 성별이 다르거나, 둘째가 첫째의 성격과 달라서 그 동안의 양육 방식이 통하지 않거나, 첫째가 동생이 생긴 후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거나, 아이들끼리 자주 다투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자녀가 하나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자녀가 주는 기쁨과 행복이 몇 배로 늘어나는 만큼 힘든 것도 같이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부모역할을 할 수 있을까? ■ 첫째를 육아에 참여시키자  둘째 출산 후 첫째자녀에게 더 신경 쓰라는 말을 주변에서 듣기도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막연한 경우가 많다. 더 어린 자녀에게 손이 많이 가고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생을 본 자녀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보면 금방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여전히 부모의 사랑이 변함없음을 확인하고 싶고 동생에게 밀려났다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 자녀가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한다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자녀 입장에서 헤아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동생을 돌보는 데 손위자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며 육아에 참여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저귀를 함께 갈아주거나 젖병을 잡아주거나 목욕시킬 때 함께 씻겨줄 수 있도록 해주자. 그리고 부모는 자녀에게 “동생 돌보는 것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OO이 덕분에 엄마, 아빠가 힘이 나고 동생도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는걸.” 하며 고마움을 전해보자(사랑도 함께 표현하는 건 기본이다). 동생을 돌보는 데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이며 가족 내 자신의 위치가 확고해진 자녀는 동생이 생긴 새롭고도 스트레스가 되는 생활에 훨씬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 자녀들의 차이를 인정하자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을지라도 자녀들의 성격이나 취향이 저마다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부모는 특정 자녀에게 적합하게 맞춰진 양육방법을 성격이 다른 자녀에게 적용하면서 자녀가 이에 따라주지 않거나 적합하지 않다 느껴지면 금방 지치고 좌절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물론 자녀양육에 있어 기준이 되는 양육원칙은 모든 자녀에게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 어미의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라는 말이 있듯, 세상에 성격이나 행동이 완전히 똑같은 아이는 없으므로 자녀들의 성격차이, 행동의 차이를 인정해주고 저마다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모가 자녀 각각의 특성에 맞는 양육행동을 할 때 자녀는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다툴 때는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공감해주어야 한다   터울이 많든 적든 대부분의 형제자매들은 툭 하면 다투는 일이 많다. 자녀들끼리 싸울 때는 부모가 어느 정도 중재를 하게 되는데, 이때 부모가 옆에서 전후사정을 모두 지켜보았다면 비교적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한쪽 자녀(특히 동생 등 대부분 더 약한 자녀)의 말만 듣고 판단하여 애먼 자녀를 혼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혼이 난 자녀는 자신의 입장은 들어주지 않는 부모에 대해 억울함을 느끼고 원망하게 된다.   자녀들이 다툴 때는 일단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각각의 입장에서 공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녀들이 스스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에서 개입하는 것이 좋다. 손위자녀에게 ‘언니/오빠’이니까 네가 참고 양보하라든지, 손아래자녀에게 ‘동생이니까’ 무조건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훗날 대인관계에서도 같은 대처행동을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다툼은 그저 스트레스 상황이라기보다는 자녀들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입장을 이해해주되 어떻게 해야 서로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박지현(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2019-12-17
즐거운 부모 노릇

즐거운 부모 노릇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아껴두었던 육아휴직을 쓰는 분들을 봅니다.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전쟁터에 나서는 심정이 그러할까요? 비장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초반부터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어야하고, 좋은 기회를 잡아야합니다. 학습능력도 키워주면서 사회성도 발달시켜야하니,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그저 3킬로그램 남짓으로 와서 내 품에 안긴 아이를, 이렇게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도록 키워낸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뿌듯함도, 그 초조함과 긴장 앞에서는 별 거 아닌 것이 됩니다. 이제 막 전선에 섰고,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12년을 버텨야하는데, 무슨 기쁨과 즐거움, 설렘이 가당키나 합니까? 아빠와 엄마와 아이가 한 팀이 돼서 오로지 승리해야 하는 전쟁입니다.  그렇게 학령기 아동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바라보면, 이것도 해 줘야 할 것 같고, 저것도 부족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의구심이 생기다가, 언뜻 전해들은 정보에 몸부림을 치고, 다시 인터넷을 뒤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너무나 열심이고, 더 할 나위 없이 최선을 다하면서도 늘 부족하고 불안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부모들로 넘쳐납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정보, 넘치는 자료를 볼 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찾고 읽고 듣는, 노력하는 부모들이 많다는 표식이겠구나.......  그런데, 필자는 ‘좋은 부모 행복한 아이’의 마지막 칼럼을 쓰면서, ‘좋은 부모’ 말고 ‘즐거운 부모’를 하자고 말하려고 합니다. 이 둘이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언제부터 우리에게 자식은 무슨 빚쟁이 같습니다. 우리의 에너지와 시간을 뺏어가고 우리의 돈을 내어 놓으라 합니다. 그것들을 잘 못해낸다고 여길 때 심하게 자책하고, 심지어 죄책감도 느낍니다. 그러면서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사랑보다는 불안이 넘칩니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더 잘해야 하는 걸까요?  아이 키우기에 좋은 사회가 아니라고 합니다. 개선되고 보강되어야 할 점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데에 우리 모두 동의합니다. 사회 전반적인 체제와 구조가 하루빨리 나아지기를 고대하는 가운데에, 우리가 좀 다르게 할 것들은 없을까 생각합니다. 자식을 키우는 데 필수불가결한 수준의 고단함과 힘듦, 그 이상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 이면에는 ‘비교하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실상, 세상의 그 많은 정보들이 주는 한 가지는, ‘남들은 이렇게 하는 데 당신은 어떠합니까?’입니다. 그러니 어서 따라잡아야 하고, 더 앞서야 마땅합니다. 그러지 못한다고 느낄 때 좌절하고 불안합니다.  학과, 외국어, 예체능, 리더십까지....... 모든 분야를 총망라합니다. 그래서 무진 애를 쓰건만, 뒤처지지 않으려고, 제대로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결과는 늘 제자리입니다. 비교라는 기제가 원래 그러합니다. 저 만큼 갔는데, 가 봤자 벌써 앞에 서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솔직성이 필요합니다. 비교의 대상은 내 아이와 주변 아이가 아닙니다. 비교의 주체는 실은 나, 부모입니다. ‘내가 뒤처지지는 것 같아서, 내가 비난 받는 것 같아서, 내가 창피해서’가 더 맞을 것입니다. 양육의 불안이 즐거운 부모노릇을 막는 현실에서, 이런 생각들을 해 봤으면 합니다. 첫째. 아이의 삶은 스물에 끝나거나, 서른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아이는 제 속도대로 성장하고, 제 가치를 지닌 존재로 삶을 진행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떡잎만 보면 다 안다고 할 것도 아닙니다. 그건 식물이지 인간은 아니지 않습니까? 둘째. 부모와 자식으로 만난 관계가 다른 관계와 구별되는 한 가지는 ‘무조건적 믿음’입니다. 단서와 전제와 조건을 붙이지 않고, 그저 오로지 내 아이여서 믿습니다. 이것은 무모함이나 어리석음이 아닌, 원래 그런 특별함입니다. 내 아이여서 무조건 사랑스럽고 무조건 자랑스럽습니다.        셋째, 자식에게 줄 것 중 물질은 후순위입니다. 돈으로 줄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는 대상이 부모입니다. 그것이 진짜이고 오래갑니다. 내 아이는 내 사후에도 오랫동안 저의 생을 살아갈 테고, 그 때 빛을 발하는 것 중 으뜸이 물질은 아닙니다. 학령기 자식에게 부모가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은, ‘내가 그런대로 썩, 근사한 녀석’이라는 마음, ‘스스로가 스스로를 좋아하는 느낌’입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 완벽하지는 않아도, 이런 저런 부족한 구석이 있지만, 나는 내가 마음에 든다는 바로 그 마음을 우리는 ‘자존감’이라고 합니다. 자존감의 원천은 부모의 태도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지각하는 그것 그대로가 아이 내면에 자아상으로 자리 잡습니다. 비교하는 언어, 비참해하는 눈빛,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태도를 보내면서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 키운들, 자존감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하여, ‘좋은 부모’보다 ‘즐거운 부모’로 갈아탔으면 합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일이 벅차도록 기쁘고, 함께 움직이는 모든 활동을 축복이라 여기며, 이 삶에서 우리가 만난 것에 감격합니다. 자다가 생각해도 이런 기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아이가 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  그렇지 않다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생에 부모노릇을 하게 되었다는 이 놀라운 혜택을 진탕 누리면서 부디, 즐겁고 신날 궁리만 했으면 합니다. 그러겠다고 마음먹으면 또,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들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기연(호연심리상담클리닉)

2019-12-16
침묵해야 하는 언어

침묵해야 하는 언어

“부모님과는 언제부터 말을 안 해요?” “음.......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학교....... 2학년 올라가면서요.” “흠....... 왜 그 때였을까요?”“마음으로, 더 이상 말해도 소용이 없다고 마음먹은 거 같아요.”  중간고사 때 시험지를 받아놓고, 손바닥에 땀이 너무 나서 펜이 잡히지 않는데, 가슴은 벌렁대고, 갑자기 숨이 멎는 것 같았다며 상담실을 찾은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과의 대화입니다. 그 이후에도 불안반응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는데, 더 걱정스러운 건 부모님은 그저 아이가 잠을 잘 못자는 것이 문제라고 알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직 ‘애기’인 그저 16세 소년인데, 그 엄청난 불안을 혼자서 껴안고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말해도 소용없음’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으니, 엄마는 늘 엄마의 이야기만 한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해도 엄마는 ‘그게 아니고’로 시작해서 엄마의 말을 기어코 다 하고 마는데, 중간에 본인이 어떤 설명을 해도 엄마의 생각은 바뀌지 않고, 오히려 말의 양만 더 늘어날 뿐이니, 말을 하면 더 손해라고 하였습니다. 엄마의 말을 이제는 다 외울 정도여서 더 들을 것도 없다는데, 그 내용은 주로 공부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엄마는 생활습관을 말하고, 학습태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답니다. 본인이 성실하고 규칙적으로 할 것을 딱딱하면서 살아야하는데, 그것을 못하니까 하는 말이라고 설명은 한답니다. 하지만,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친구 엄마들 모임을 갔다 오는 날이면 그 ‘말’이 엄청 길어진답니다. 그 ‘말’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정해져 있고, 돌고 돌아 그 ‘말’의 요점을 정리하면 결국, ‘친구 누구누구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안 그러니? 못하니?’가 된답니다. 그러면서 ‘꼭 공부를 잘하라는 게 아니라.......’를 넣는데, 소년은 그게 더 역겁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그리고 흔한 장면입니다. 부모는 분명 걱정을 말했을 겁니다. 점차 학년은 높아지는데, 아이가 ‘정신을 덜 차린’ 것 같으니, 이 시기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라고 친구를 예로 들어 자극을 주었을 것입니다. 아이를 걱정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정말 그게 다일까요? ‘엄마가 친구 엄마들 모임에 다녀오는 날이면 쏟아질 말 때문에 집에 가기가 싫었다’는 소년의 기억은 왜곡일까요?    우리는 자식을 키우면서,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동창모임이든, 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이든 그런 데에서 마음을 건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는, 그 자리에 없는 각자의 남편이 튀어나오고, 또 아이들이 번갈아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오롯이 나로서 앉아있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이기에, 비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어떤 때는 남편이 창피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아이 때문에 부끄럽고, 저 집 아이가 부러워서 짜증이 납니다. 가볍게 그러다 말 때도 있고, 또는 그런 감정이 속까지 파고들어, 며칠을 힘들게 합니다.  아이를 키우며 침묵이 가치를 발할 때가 이런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날 귀가하여 아이를 붙들고 하는 이야기가 온전하고 건강하기란 어렵습니다. 제 아무리 우아하게 시나리오를 쓰려고 한 들, 결론은 ‘왜 넌 아무개만큼 하지 못하니?’입니다. 그리고 그 언어의 어디에도 아이를 걱정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진심은 없습니다. 사실은, 내가 못 견디겠는, 불편한, 싫은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내 아이가 저 아이보다 월등해서 내가 이런 마음을 갖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속내입니다.  아이 또한, 잘 포장한 겉이 아니라, 속마음을 정확하게 읽습니다. 나보다 나은 아이와 비교당하면서, ‘그래도 엄마가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닐거야, 나 잘되라고 걱정이 돼서 그러시는거야!’로 듣는 아이는 없다고 봅니다. 그저 듣기 싫고, 어깃장을 놓고 싶고, 부정하고 싶을 뿐입니다. 마음에는 화가 쌓이고, ‘그러는 엄마는 뭐? 아빠는 어떤데?’하면서 부모를 깎아내리는 소리를 삼켜냅니다.  그러니 부디, 그 날 듣고 온 이야기는 집 밖에 뿌리고 왔으면 합니다. 누구누구가 어찌되었다는 소식을, 사건을 아이에게 전한 것뿐이라고 우기지 말고, 그저 내 안에서 소화하거나, 버리거나 하면 좋겠습니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장면은 아마도 배우자와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창들을 만나고 온 날이, 배우자와 다툼이 생길 가능성이 아주 높은 날입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누구도 비교의 말에 장사는 없습니다. 깊거나 얕은 상처를 줄 뿐이니, 비교의 말을 침묵해야 하는 언어로 분류하면 어떤가요? 한 기연(호연심리상담클리닉)

2019-12-10
좋은 엄마 아빠는 타고난다? : 모성과 부성

좋은 엄마 아빠는 타고난다? : 모성과 부성

  주변 사람들 중 유독 아이를 예뻐하거나 부모역할을 똑 소리 나게 잘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좋은 부모역할은 원래 저렇게 타고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역할은 원래 타고나기보다는 학습되는 것이며, 노력을 통해 더 좋은 부모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 모성과 부성은 배우는 것이다  모성(motherhood)과 부성(fatherhood)은 자녀양육에 관한 자질, 경험 또는 양육을 수행하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모성과 부성은 자녀를 잘 기르기 위한 부모역할과 마음가짐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성과 부성은 어려서 받은 양육경험에서 시작된다. 즉, 자신의 부모에게서 받은 돌봄이나 부모-자녀관계로부터 모성과 부성을 배우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어린 자녀는 부모의 모성과 부성을 배우고 성인이 되어 같은 방식으로 부모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 모성과 부성은 노력하는 것이다  모성과 부성은 부모에게서 배우는 것이라 했는데, 혹여 건강한 모성과 부성의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어떨까. 나의 모성과 부성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건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모성과 부성은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자녀양육과 부모역할에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충분히 향상될 수 있다. 모성과 부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자녀의 이야기나 감정에 귀기울여주고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를 만들어 나가보자. 모성과 부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당신은 이미 좋은 자질을 갖춘 예비부모이다. ■ 모성과 부성은 함께 하는 것이다  자녀양육에 있어서 모성과 부성은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부모역할은 부부가 함께 협동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갖기로 했다면 지금부터 부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본인의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관계, 부모님을 닮고 싶은 점과 좀 더 개선하고 싶은 점, 자녀에 대한 가치관, 좋은 부모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부모로서의 부부는 대화를 통해 함께 성장한다. 박지현(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2019-12-10
한계설정과 자기 통제력

한계설정과 자기 통제력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에서 수없이 나오는 말 중에 꼭 포함되는 것 하나를 들라면 ‘말 좀 들어라!’ 일 것입니다. 부모가 한 번 하지 말라는 행동은 하지 않고, 또 한 번 약속한 것은 그대로 지키는 아이가 세상에 있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요? 그러나 세상에 그렇게 ‘이상한 아이’는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아이가 있다면 실은 아주 걱정스럽겠죠. 마음이 크게 쪼그라들었거나 공포심에 물들어 잔뜩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나 기대할 수 있는 행동이니까 그렇습니다.   두 살 남짓 말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 아이 입에서는 ‘싫어, 안 해’ 소리가 나오고, 그건 자신과 부모의 생각이 다르다는 말이고, 본인은 부모의 의사를 따를 생각이 없다는 명시적 표현입니다. 그렇게 아이는 자아가 발달하고, 자기중심이 생기고, 세계 속에서 의식을 지닌 한 존재로서 자리매김을 하며 살아 나갈 것입니다. 이렇다는 것을 다 알겠는데, 그래서 가능한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뜻을 받아주겠다고 결심한 부모이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에 ‘예스’를 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한 인간으로서 갖춰야할 많은 덕목이 있겠지만, 개인의 삶을 보다 효율적이며 수월하게 진행시키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건 ‘자기통제력’이라고 봅니다. 하고 싶은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지금 할 것과 나중에 할 것, 귀찮고 힘들어도 더 해야 할 것과, 달콤하고 흥미로워도 그만 해야 할 것들을 구별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 어쩌면 이것이 삶의 모든 중요한 것을 관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학창시절에 공부하는 일, 자극적이지만 위험한 활동을 중도에서 접는 일, 더 성장해서는 게임을 비롯한 각종 중독 유발 활동을 적정수준에서 즐기는 일, 운동이나 취미에 능숙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성실성과 인내심까지 모든 방면에 관여하는 자기 통제력의 근간은 한계설정을 수용하도록 하는 양육입니다.  한계설정이란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되는지, 어디까지는 가능하고, 어디서부터는 불가능한지를 정하고 지키는 일입니다. 이는 생의 아주 어린 시기부터 양육이 있는 곳에 함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젖먹이가 젖을 떼고 이유식을 먹는 일, 자동차를 탈 때는 반드시 유아용 카시트에 앉아야하는 일, 아이스크림을 식사 전에 먹으면 안 되는 사안까지 실은 다 한계설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세상에 적응해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돼, 안 돼’가 어려운 이유는 그들의 뇌가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고와 정서를 조절하는 부위인 전두엽은 뇌의 다른 모든 영역의 정보를 모으고 조정하며, 전체 신체 시스템에서도 신호를 받아 그것들의 기능을 조정하는 일을 합니다. 한데, 이 전두엽이 제대로 발달해야 생각하고 예견하고 선택하고 느끼는 것들 사이의 조절이 원활해집니다. 당연히, 어린 아이일수록 그것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하여, 아주 어린 아이들은 언어로 위험을 알리는 것은 의미가 없고, 쏜살같이 달려가 잡아채야할 때가 있죠. 조금 커서도 뒤통수에 대고 ‘해라, 하지 마라’를 하는 것이 소용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아이 앞에 가서 아이 손을 잡고 눈을 보며 선명하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보게 하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쪽이 낫습니다.  이처럼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해야 마땅한 한계설정이어서, 학령기 아동에게 지금 사용하기에는 너무 늦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잘 해왔다면 더 좋겠지만, 이제라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양육에 늦은 나이란 없습니다. 이제라도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 본인에게 유익한지, 그 반대가 어떤 고통을 가져오는 지를 알리고 실천하도록 도와야합니다.  아이에게 한계설정을 가르칠 때 이런 점을 유념했으면 합니다. 첫째. 아이로서는 하고 싶은 것을 멈추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부모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오는 일, 친구 집에서 약속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 게임을 멈추는 일, 만화를 그만 보는 일.......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멈추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 어른들도 어려운 일 아닙니까? 둘째. 하고픈 것을 멈출 때, 내적 긴장이 생기고 불쾌하고 압박감을 느끼는 그 기분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행동이 제지당하면서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불편감에 공감해주고 그 기분을 말로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무작정 안 된다고 하는 금지와는 매우 다른 과정입니다. ‘얼마나 아쉬운지! 얼마나 속상한지! 조금만 더 하고 싶은 그 마음이 간절한지!’ 부모가 먼저 알아주고 읽어주면, 아이도 본인이 아는 대로 자신의 기분을, 마음을 토로합니다. 그런다고 안 되는 것이 되는 것으로 바뀌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아이는 스스로의 기분에 머무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셋째. 그랬는데도 여전히 고집을 피우고 떼를 쓴다면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여기가 중요합니다. 충분히 머물렀고, 이해시켰고, 언어화하도록 도왔지만, 아이의 욕구가 강렬하여 불협화음이 쉽게 조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부모가 아이의 기분을 풀어 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그저 혼자서 남은 나쁜 감정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학습지를 하기로 했고, 본인도 수긍했고, 약속한 시간이 되어서 게임을 멈췄습니다. 짜증나고 아쉬운 마음도 이해합니다. 야단치고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학습지를 풀면 됩니다. 눈물을 흘리며 풀거나, 낙서를 해 가며 푼다고 다시 불러다 야단을 치고 훈계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엉터리로 풀었다면, 그 결과를 보고, 다시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불같이 화 낼 필요는 없습니다. 넷째. 이런 경험을 통해서 아이는 자신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어떤 약속을 지키기 힘들어하는지, 어떤 때 좌절하는지, 일과 놀이의 순서를 어떻게 하는 쪽이 자신에게 잘 맞는지, 부모와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타협하는 것이 나은지, 좀 힘들더라도 약속과 계획을 지켰을 때 어떤 기분 좋은 느낌이 있는지....... 자신에 관한 소중한 정보를 스스로 알아가는 일입니다. 한계설정은 이와 같은 규칙성을 가지고 일관되게 반복될 때,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와 원칙이 점차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되고, 자기통제로 자리 잡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충동과 욕구를 조절하며, 자신에게 진정 좋은 일들로 일상을 채운다면, 살아가는 일이 점점 흥미로워지지 않겠습니까?       한 기연(호연심리상담클리닉)

2019-11-19
인간관계의 기초, 애착형성

인간관계의 기초, 애착형성

 자녀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지켜보면 아이들 저마다의 특성이 보인다. 특히 서로 장난감을 차지하겠다고 다투거나 갈등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능력에서 아이들마다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다가가기 편안한 사람과 쉽지 않은 사람 등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잘 하는 사람과 서툰 사람이 있다. 무엇 때문에 성격이나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까? 바로 자라 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다양한 환경과 경험 중 하나인 애착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 한다. ■ 생애 최초로 맺게 되는 인간관계  애착은 인간이 태어나 처음으로 맺게 되는 정서적 유대이자 사랑이다. 즉, 부모나 주로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과 맺는 친밀한 관계를 의미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부모는 아기의 생존을 위해 세심히 보살펴 주어야 한다. 아기는 배가 고프거나 어딘가 불편할 때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때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아주는 등 아기의 신호와 욕구에 맞추어 반응해주면 아기는 자신을 보살펴 주는 사람에 대하여 ‘믿을 만 한 사람이구나.’ 하는 ‘신뢰감’을 형성하게 되며 더 나아가 ‘이 세상은 살아볼 만 한 곳이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며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기본자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애착을 안정적으로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녀가 커가고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내내 어린 시절의 애착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애착의 유형 영아가 부모나 주양육자와 형성한 애착의 질을 측정하기 위한 것으로 아인스워스(M. Ainsworth)가 고안한 낯선 상황 실험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장난감이 있는 상황에서 1-2세 영아가 엄마와 있다가 낯선 사람이 들어오고 엄마가 잠깐 나갔다 돌아오는 장면에서 영아가 보이는 반응에 따라 안정애착과 불안정애착으로 나눌 수 있다.  ▶안정애착   부모와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한 영아는 엄마와 분리되었을 때 불안해하지만 엄마가 돌아왔을 때 반가워하고 평온함을 되찾으며, 엄마를 안전기지로 삼아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인다. 대부분의 영아에게서 나타나는 형태이다.    ▶불안정애착  낯선 상황에서 엄마가 잠시 나갔다 돌아왔을 때 엄마에게 화난 듯이 저항하거나(저항애착) 엄마를 반기지 않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회피애착) 멍하고 얼어붙은 듯 행동하다가도 엄마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혼란애착) 등 안정된 패턴을 보이지 않는 경우 불안정 애착으로 분류할 수 있다. 부모나 주양육자가 일관된 양육방식을 취하지 않았거나 자녀를 거부하는 등 자녀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제공하지 못하고 건강한 상호작용을 하지 못한 경우 불안정 애착이 형성된다. ■ 안정애착을 형성하려면?   애착은 자녀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행동과 건강한 대인관계의 기초가 되며, 자라면서 또래관계, 학습능력, 더 나아가 성인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안정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해야 안정애착을 형성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양육의 ‘민감성과 일관성’이다. 민감성은 자녀의 울음 등 영아의 신호에 대해 즉각적이고 적절하게 반응해 주는 것이고, 일관성은 이러한 반응을 일관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자녀의 신호에 둔감하거나, 부모의 기분이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 마음이 여유로울 때와 귀찮을 때 자녀에게 반응을 달리 하며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자녀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물론 자녀에게 부모가 100퍼센트 민감하고 일관적이지는 못할 수도 있다. 부모도 자신의 일과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가 최소한의 생활의 균형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민감한 반응과 양육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자녀를 대하는 시간만큼은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면 자녀도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 박지현(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2019-11-19
 다 너를 위해서야

다 너를 위해서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는 연극을 하겠다는 고등학생 아들과 그것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아버지가 나옵니다. 뜻을 굽히지 않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규율이 엄격한 사관학교로 전학을 가고, 이후 하버드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어야한다는 명령을 내리면서 덧붙인 말이 있습니다. ‘넌 내가 꿈도 꾸지 못한 기회를 가진 거야, 네가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게 둘 수 없어’ 영화 속에 아들이 다닌 학교는 상류층의 자제가 다니는 우수한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나옵니다.  그런 환경에서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아이는 드물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부모는 어마어마한 관심, 시간, 에너지와 돈을 투자하였을 테고, 또 아이는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따랐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부모가 각기 다 다른 상황과 입장에 있겠지만, 그들이 자식 앞에서 동일하게 사용하는 언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 너 잘되라고, 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식과 연관된 장면에서 하는 어떤 행동도, 말도, 생각도 다 자식을 위해서 그런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주변에 중학생 자녀가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일에 너무 열중한다며 크게 걱정하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서 공부를 안 한다는 걱정인가보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공부는 알아서 하는 편이라 크게 걱정이 없는데, 아버지는, 아들의 그 열중 자체가 싫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주로 찍는 주제가 시답지 않은 개그 소재들이고, 장래희망도 희극 영화를 만드는 일이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일단 개그맨이 되어야겠다는 말을 하는데, 먹던 밥알이 다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며 다시금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의 영상물을 보았냐고 물으니, 또 다시 ‘그 한심한 개그, 말도 안 되는 시시껄렁한 주제’라고 열을 내길래, 다시 ‘영상 자체는 어떠하냐?’고 물으니 그제야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아들이 개그맨 운운 하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들의 영상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아들은 아버지와 자신이 찍은 영상에 대해서 어떤 말도 나눌 수 없었습니다. 자랑도 하고 싶었고, 설명도 하고 싶었을 텐데요, 어쩌면 정말 아이의 재주가 돋보이는, 연령 대비 훌륭한 작품이었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성장하는 자녀는 여러 가지 것들에 호기심을 보입니다. 요즈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아이들이 많다는 걱정 속에서, 어떤 영역에 관심과 가치를 두는 사춘기 아이를 만나는 것은 반갑고 흐뭇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호기심의 분야와 정도는 매우 다양해서, 부모는 감히 상상도 못한 주제일 때도 있고, 또는 전혀 가치를 두지 않거나, 아주 싫어하는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본인의 가치에 맞지 않는 주제에 몰두하는 아이 앞에서 부모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경우가 위의 사례처럼, 부모의 가치와 아이의 선택이 어긋날 때, 부모 쪽에서 강경한 ‘no’를 할 때 입니다. 전통적 개념의 출세나 명예, 학문을 통한 성취를 매우 중요하게 여길 경우, 그렇지 않은 것들은 ‘해서는 안 되는, 시간을 낭비하는 멍청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참, 고리타분하지만, 여태도 부모의 강권으로 의대를 갔고, 로스쿨을 갔고, 유학을 갔다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자식은 그 길이 아니라는데, 부모는 줄곧 이쪽이 맞다 하면서 온갖 지원을 합니다. 부모의 돈과 관심이 증가하면 할수록 자녀는 그 분야를 그만두는 것을, 혹은 거기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에 엄청난 두려움과 죄책감과 열등감을 갖습니다. 설사 부모가 원하는 어떤 ‘직함’을 갖게 되었다고 해도,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는 힘들 것입니다.  부모가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다’는 말과 함께 쓰이는 언어로는 ‘너는 아직 어려서 모른다, 나중에는 부모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가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래의 어느 날 내 아이가 본인이 선택한 것에 만족하며 살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사실 어떤 분야인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시간까지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가?’에 있지 않을까요? 열정과 성실과 인내로 꾸준히 살아왔다면, 그 어떤 주제에서도 그 친구는 만족해하며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가요? 살아보니, 우리가 어릴 때 부모님이 해 주신 말들이 다 맞았나요? 옳았나요? 물론 옳은 예언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부모의 편견이나 선입견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견해도 역시 많았습니다.   사춘기 아이가 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부모의 답변은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게 뭔데? 아빠는 잘 모르는데 말 해 줘봐. 너는 그게 좋다고? 그걸 어떻게 좋아하게 됐어?’ 그것이 무엇이든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것입니다. 부모 스스로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알아보고 난 뒤에 또 다시 묻고 답변을 듣는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취미가 그저 취미일지, 일생을 걸만한 일일지, 자신과 잘 맞는지, 재능이 있는지 확인해 나갈 수 있습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내 마음과 같지 않을 때, 그저 ‘틀렸어, 안돼’가 아니라 ‘너는 그렇구나....... 너는 나와 다르구나.......’를 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습니다.    한 기연(호연심리상담클리닉)

2019-11-12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귀하고 소중하며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아이들이 성숙한 성인으로 자라는 것은 아닌 듯하다. 자녀를 어떻게 길러야 잘 성장할 수 있을까? 자타공인 잘 컸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부모를 보면 대부분 공통된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자녀를 어떻게 대하는 것일까? ■ 자녀는 소유물이 아니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하기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능력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것들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수저의 종류로 계급을 나누곤 하는 요즈음 내 자녀가 뒤처지는 일은 부모 자신이 뒤처지는 것보다 참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녀계획을 하고 있는 예비부모들도 이왕이면 자녀를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키울 수 있도록, 남들보다 좋은 조건에서 키울 수 있도록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경계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이렇게 준비하는 데에는 이미 자녀를 위해 내가 그려 놓은 길로 따라가게 하려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길이 자녀의 개성과 꿈을 위한 안내자로서 역할 한다면 다행이지만 그 길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났지만 부모의 소유물은 아니다. 자녀는 또 다른 하나의 인격체이므로 자녀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단, 이것이 자녀의 안전에 위해가 되거나 사회의 규칙에 반하는 경우에는 훈육이 필요하다.)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얘기는 이제 옛말이다. 잘 컸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부모는 자녀는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했다는 것을 마음에 담아두자. ■ 자녀는 대리만족의 대상이 아니다: 자녀가 진정 원하는 것 찾기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부모의 꿈이 배우였으나 이를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많던 차에 부모를 닮아 ‘무대체질’인 자녀를 꼭 배우로 만들어야겠다며 길을 정해주고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녀 스스로의 선택이었다면 모를까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녀가 아니라 부모였다. 자녀가 소유물이 아닌 것처럼 자녀는 부모의 못 다 이룬 꿈이나 소망을 대신 이루어 주는 대리만족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부모가 아닌 자녀를 위해 자녀가 진정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심하게 살펴줄 필요가 있다. ■ 자녀는 함께 사는 사회의 일원이다: 가치를 심어주기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하는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녀도 마찬가지이다. 자녀도 성인이 되어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이런 가치를 잘 심어주고 이끌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박지현(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2019-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