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X 이찬승 대표_2편, 교실 밖으로 나간 아이들의 기적
여성가족부 X이찬승 대표
교실 밖으로 나간 아이들의 기적
이찬승 (공익활동단체_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교실 밖으로 나간 아이들의 기적
이 글은 Edutopia가 발표한 「2024년 교육 분야 10대 주요 연구」 중 하나인 ‘자연 저널링(nature journaling)’ 수업 실천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자연 저널링은 단순한 생태 체험을 넘어 학습 효과와 심리 정서적 회복을 동시에 이끄는 교육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자연과 점점 멀어지는 한국의 도시 환경에서도 손쉽게 실천할 수 있어, 아이들의 관찰력, 글쓰기, 정서 안정을 함께 키울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교실 밖에서 아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작은 변화의 시작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선생님, 나비가 꽃가루받이를 어떻게 해요?”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비의 입, 꽃의 구조, 꽃가루가 옮겨지는 과정을...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교과서에 밑줄을 그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 저는 나비가 꽃에 앉는 걸 실제로 본 적이 없어요. 정말 저렇게 하나요?”
다른 아이가 맞장구쳤다. “맞아요! 나비는 봤는데, 꽃가루받이하는 건 못 봤어요.”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꽃가루받이를 배우는 아이들이 정작 그 장면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아이들은 개미가 협동한다는 걸 배우지만, 실제 개미집 앞에서 개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은 없다. 꽃의 구조를 외우지만, 꽃가루받이가 일어나는 생생한 순간은 본 적이 없다. 모든 배움이 책상 위에서, 상상 속에서만 일어난다.
책 속에만 있는 자연
아이들이 자연을 교과서 속 그림으로만 만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위험해서 안 돼.”
“더러우니까 만지면 안 돼.”
“시간이 없어, 교실에서 배우자.”
어른들의 걱정과 바쁜 일정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더 실내로 갇혀갔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학교가 점점 실내 중심으로 바뀌고 있으며, 야외 활동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아이들의 바깥 시간을 줄이고 있다”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2024년 한 연구가 충격적인 현실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자연을 상상으로만 배우면서, 창의성과 상상력이 오히려 억눌리고 있다는 것이다.
꽃가루받이가 일어나는 실제 순간을 본 적 없는 아이가 쓴 생태계에 관한 글. 지렁이를 관찰해 본 적 없는 아이가 그린 토양 생물의 그림. 과연 그것들이 생생한 이해로 이어질 수 있을까?
교실 밖으로 나선 아이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연필과 공책을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오늘은 바깥에서 공부해 볼까?” 아이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밖에서 뭘 하라는 걸까?” 하지만 곧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저 잎사귀 색깔 좀 봐!”
“개미가 먹이를 나르고 있어!”
“구름이 토끼 모양 같지 않아?”
아이들은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것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적었다.
“와, 나비가 정말 꽃에 앉네!”
“꽃가루가 나비 다리에 묻었어!”
“이게 바로 꽃가루받이구나!”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아이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것이 바로 ‘자연 저널링(nature journaling)’이었다.
보는 법을 배운 아이들
미국의 한 학교에서 5~7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한 그룹은 교실에서 평소대로 수업을 받았고, 다른 그룹은 정기적으로 밖으로 나가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몇 달 후,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자연 저널링을 한 아이들에게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자존감이 높아졌다.
관찰력과 집중력이 향상되었다.
글쓰기 실력이 늘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다른 곳에 있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전에는 그냥 지나갔는데, 이제는 모든 게 달라 보여요. 나뭇잎 하나하나도 다 다르게 보이고, 하늘도 매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느린 배움의 힘
어느 날, 자연 저널링 수업에서 한 아이가 30분 동안 꽃 한 송이와 그 위에 앉은 나비를 관찰했다. 다른 아이들은 여러 가지를 그리고 있는데, 이 아이는 나비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지켜보며 기록했다.
선생님이 물었다. “왜 나비만 보고 있어?”
아이가 대답했다. “처음엔 그냥 예쁜 나비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정말 신기해요. 코를 빨대처럼 길게 늘여서 꿀을 빨고, 다리로 꽃가루를 묻혀 가요. 교과서에서 본 거랑 똑같아요! 아니, 더 신기해요!”
이것이 자연 저널링의 마법이었다. 빠르게 정답을 찾는 대신, 천천히 관찰하며 스스로 발견하는 기쁨.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도시 아이들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자연이 별로 없는데요.”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
학교 화단에 핀 작은 꽃,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이는 하늘, 길가에서 만나는 길고양이, 빗방울이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 심지어 도시의 소리들 – 새소리, 바람소리, 빗소리까지도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도시 학교의 선생님이 말했다. “처음엔 우리 학교 주변엔 관찰할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나가보니, 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걸 놓치고 살았는지 깨달았어요.”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
자연 저널링은 단순한 학습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스트레스가 많다. 학업 부담, 또래 관계, 끝없는 비교... 그런 아이들에게 자연 저널링은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세상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한 아이의 일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오늘 나비가 꽃가루받이하는 걸 봤다. 교과서에서 본 그림이랑 똑같았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훨씬 더 신기했다. 나비도 열심히 일하는구나. 나도 나비처럼 열심히 해야지.”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아이들은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스트레스를 다루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시인이 될 아이, 과학자가 될 아이
자연 저널링을 하는 아이들 중에는 시를 쓰기 시작한 아이도 있고, 곤충에 빠져든 아이도 있다. 어떤 아이는 날씨를 관찰하는 걸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새의 움직임을 그리는 데 몰두한다.
중요한 건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관심사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시인이 되기도 하고, 과학자가 되기도 하며, 혹은 단순히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교실 밖으로 나갈 용기
어느 선생님이 망설이며 말했다. “나가서 수업하고 싶은데, 혹시 아이들이 다칠까 봐 걱정돼요.”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아이들에게 정말 위험한 건 무엇일까? 무릎이 까지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는 것일까?
자연 저널링은 거창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바깥으로 나갈 작은 용기를 내는 것이다.
경이로움을 되찾은 아이들
한 아이가 자연 저널링을 시작한 지 몇 달 후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그냥 꽃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다 달라 보여요. 이 꽃에는 나비가 올까, 저 꽃에는 벌이 올까 궁금해져요. 그리고 정말로 와요! 교과서가 진짜였어요.”
이것이 자연 저널링이 아이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일상의 경이로움을 되찾고, 평범한 것들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눈을 기르며, 무엇보다 자신 또한 이 아름다운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이들이 다시 세상을 만지기 시작했다. 연필 끝으로, 마음으로, 온몸으로.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아이들의 삶 전체를 바꾸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아이들의 손에 연필을 쥐어주고, 함께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그 문 너머에는 무수한 배움과 치유, 그리고 경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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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Hopkins, L., & Rivera, J. (2023). Learning outside the walls: Nature journaling and interdisciplinary education. Journal of Experiential Learning, 41(2), 145–162.
- Chou, Y., Delgado, M., & Peters, S. (2024). The impact of nature journaling on student well-being and cognitive development. Environmental Education Research, 30(1), 88–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