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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평등이야기

옛날에 남성과 여성은 똑같이 부모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을까요?

조선중기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여성을 낮추어 보고 차별하는 사회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여러 역사 자료를 살펴보면 조선 중기까지는 대체로 남성과 여성이 평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특히 16세기까지는 아들딸 구별 없이 재산을 물려받는 ‘균분상속제’가 이어져 내려왔답니다.

대표적으로 율곡 이이의 형제자매가 부모님에게 재산을 물려받은 사례를 살펴볼까요?

"부모의 재산은 부모 양쪽의 토지와 노비를 똑같이 나누고, 누락된 노비를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먼저 한 명을 준 뒤 나이 순서에 따라 《경국대전》에 나온대로 재산을 나눈다." <율곡선생남매분재기>

출   처『경국대전(經國大典)』(조선 시대의 기본 법전)

율곡의 형제자매는 부모님의 재산을 남녀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나누었어요. 게다가 ‘부모 양쪽’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버지(이원수)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신사임당)도 자기 재산을 가지고 있었어요.

아들과 딸이 즉, 남녀가 공평하게 재산을 물려받고 나누는 일은 율곡 선생 집안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어요. 당시 대부분의 집안에서 이루어졌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줄곧 낮지만은 않았어요. 유교가 굳건히 뿌리내리기 전인 조선 중기까지 여성은 남성과 비슷하거나 동등한 대우를 받았어요.

조선 시대에도 출산 휴가 제도가 있었어요

여러분은 세종대왕 하면 무엇이 생각나나요? 한글 창제, 장영실 등의 인재 등용, 과학·천문학·음악 발전과 같이 여러 업적이 떠오르겠지만, 세종대왕에게는 또 다른 훌륭한 업적이 있답니다.

세종대왕은 노비 출산 휴가 제도를 시행했어요
세종대왕

세종대왕은 천한 노비 신분이라도 그들 또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어요.
1426년 세종대왕은 노비도 사람이니 여자 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휴가를 100일을 주라는 명을 내렸어요.

그 뒤 세종대왕은 아이 낳을 때가 다 된 여종이 배부른 몸으로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이를 딱하게 여긴 세종대왕은 아이를 낳기 전에도 한 달의 휴가를 주게 했어요. 또 한 여종이 출산 휴가를 받았지만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 갓난아이가 죽게 되자, 아이를 낳은 여종의 남편에게도 한 달 동안 휴가를 쓰게 했답니다.

출   처『조선왕조실록』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

현재 우리나라에도 아기를 낳기 전과 낳은 후에 쉴 수 있게 하는 ‘출산전후휴가’ 제도가 있지만 법으로 보장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남성도 아이를 돌보고 키우기 위해 직장에서 ‘육아 휴직’이라는 휴가를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남자가 아이를 키우려고 일을 쉰다고?’ 하는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선뜻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고 보면 세종대왕의 노비 출산 휴가 제도는 시대를 앞서나간 훌륭한 제도였어요.

세종대왕은 여성의 질병을 진료하기 위해 ‘의녀 제도’를 지방으로 확대 실시했어요
의녀

‘의녀’란 조선 시대에 여성의 질병을 진료하기 위해 두었던 여성 의원을 말해요. 조선 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자기 집안사람이 아니면 남녀가 함부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어요. 그런 탓에 부녀자들은 병에 걸려도 남자 의원에게 치료 받지 않고 죽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를 딱하게 여긴 세종대왕은 각 지방마다 관청의 노비 중에서 의녀를 뽑아 제생원 (조선 시대 의료기관)에서 기본 의술을 가르친 뒤 부녀자들을 치료하게 했답니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치료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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